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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

유행을 팝니다 : 원소주와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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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느닷없이 소주 하나가 주류 시장을 휩쓸었던 상황이 있었다. 원 소주 (One Soju). 아티스트 박재범이 만들었다는 힙한 소주였다. 일반적인 소주에서 볼 수 없었던 감각적인 디자인과 콘셉트. 전통 증류 방식으로 제조하여 인정받았다는 맛. 젊은 대중들은 그에 열광하였고, 제품은 품귀 현상을 빚기 일쑤였다. 

지난 6월 지방선거가 겹쳐있던 시기.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하고 머리를 식힐 겸 잠시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간 정제되어 있던 생각들을 소분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부산에 있던 이 무렵 원 소주의 팝업 스토어가 부산에 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이었던 나였지만 문득 궁금해졌고 구매하고 싶어졌다. 여행 이틀 차였던 기간부터 오픈하였기에 볼일도 볼 겸 잠시 다녀오고자 했다. 계획했던 생각을 철회하기까지 정확히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루 구매 입장 가능 수용인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계획과 동시에 들려왔다. 결국, 맛은 커녕 실물을 보는 것 자체부터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부터는 편의점에서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증류 가공 방식을 한 단계 제외하고 내놓는 버전인 '스피릿'이라고 한다. 이건 운이 좋게도 같이 일하는 동료의 빠른 발품(?)을 통해 구매할 수 있었다. (값을 꽤 두둑하게 쳤기도 하고)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한잔씩 마셔보면서 드디어 힙하다는 그 맛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발매한 오리지널 버전은 아니었지만, 스피릿 또한 원 소주였으니. 예상외로 내 결에 맞지 않은 맛이었다. 그 이후 어떻게 기회가 되어 오리지널을 넉넉하게 구매하게 되어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했지만, 오리지널은 아직 오픈되지 않은 채로 냉장고에 잠들어 있다.

 

한때 대란이었던 이 녀석도, 지금은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중의 유행을 바라보면 언제나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뜨거울 때는 화산처럼 타오르고 지축을 뒤 흔들며, 대폭발을 일으키기만 그 끝은 모든 활동을 마치고 산화한 휴화산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잊혀갔다. 일순의 즐거움으로 보기에는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보이고, 누구나 사활을 건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해서 버려지는 유행이 과연 어떻게 남겨지게 될까? 코 풀고 버리는 휴지 몇 장에 신세와 비단 무엇이 다를까? 

원 소주와는 결이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최근의 유행들 가운데서도 빅 히트한 작품이 바로 mbti라고 본다. 16가지의 픽토그램으로 나뉜 성향적 유형과 이를 통한 심리를 반추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지표다.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 혈액형 마냥 신봉하는 사람들도 꽤 여럿 존재한다는 점이다. 60억 인구 개개인의 성향을 16개의 지표로 나눈다? 제 아무리 분석 심리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한 인간의 성향을 고작 16개의 기준 속에 꾸겨 넣고, 일부라도 들어맞으면 마치 진실인양 판단해버리는 사고. 이 얼마나 편협한 행위인가. 원소 주 마냥 즐겁게 누리겠다면 모를까. 여기저기서 근거자료로 분석을 하고 대입하기 바쁘다. 인간과 연애 심리는 물론이요, 경제와 경영, 행동, 대중, 나아가 종교까지. 유사과학을 넘어 인류의 바이블로까지 찬양돼버리는 듯한 mbti는,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관점의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대중의 치부로 남겨지고 있다. 

 

떠밀려오는 파도를 볼 것인가, 시작되는 줄기를 볼 것인가는 각자의 관점에 달렸다.

 

앞서 간다는 것. 남들보다 빠르게 사용해본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리고 그에 편승하거나 편승된 제품이나 유행들도 여태껏 다분했었다. 허니버터 칩, 포켓몬 빵, 메이플 빵, 곰표 맥주, 꼬북 칩, 꼬꼬면... 이 외에도 수많은 유행들의 잔재가 시장에 널려있는 오늘이다. 꾸준히 판매량을 유지하는 것도 있겠지만, 찰나의 영광처럼 잊히고 외면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일부의 경우는 제품을 생산한 기업의 문제로 인한 결과도 있겠지만) 패션도, 음악도, 스타일도 모두 시시각각 변해가는 시대라지만, 이제는 우리 것에 맞는 정착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마 그러한 시간들이 조금씩은 만들어지고 차차 스며들어갈 상황도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휩쓸리듯 쓸려가는 우리네 유행이라는 것이 뭇내 아쉬운 건 이 때문일 것이다. 

 

- 2022.12.13 : 탈고

※ 본 게시물은 CHRP '문화유랑단'을 통해 동시 공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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