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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

첫 낙차, 첫 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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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었다. 분명 뒤의 차가 오는지 간격을 살피면서 달린다고 생각했던 찰나였다. 순간 밟고 있던 페달이 콱! 하고 막히면서 앞바퀴에 충돌이 났다. 찰나의 상황으로 전방을 향하던 내 시선은 금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고 이내 상황을 받아들였다.


시작은 토요일 밤에서 자정을 향해가던 시간이었다. 대략 2~3개월 가량 타지 못했던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몇 주가량 반복되던 상황이었지만, 나름의 핑계로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주 주말에는 꼭 타야겠다'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수 없이 되뇐 끝에 그날이 왔다. 날도 꽤 쌀쌀해졌고, 겨울도 찾아왔기에 올해 마지막 라이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타고 오자는 마음으로 두툼하게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여기저기 먼지는 좀 쌓여있지만 나름 관리를 잘한(?) 덕분에 녀석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자전거라는 것은 엔진이 생명인데, 이 엔진 자체가 부실하다면 아무리 좋은 녀석이라 해도 제 실력을 발휘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그간 헬스 조금 한다고 깝죽대던 찰나였다 여행 전후로 제대로 한방 맞고 부지런히 횟수를 늘려가며 운동을 해온 시간이 있어 개인적인 상태도 궁금했던 차였다. 그렇게 다시 조우한 녀석과 달릴 채비를 마치고 가볍게 페달을 굴려보았다. 아무래도 같은 자리에서 굴리는 것 보다야 환경적인 요소가 상당했지만, 그럼에도 상쾌한 맛은 여전했다. 글라스에 김이 서리는 것이 뭇내 불편하긴 했지만 안전을 위해서 참아야 했을 뿐이다. 그렇게 달리던 중에 익숙하게 코스를 이동하면서 도로로 진입했다. 길이 살짝 미끄럽다는 기분도 들긴 했지만 긴장하면서 타는 습성이 있기에 여전히 주의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신호가 걸려 잠시 대기를 하였고, 곧 상황이 벌어졌다.  

정적을 깨고 일어나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일단 왼쪽 무릎의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할 만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왼쪽 무릎을 움직여봤다. 부러지거나 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단지 일정 각도 이상을 굽히는 것은 무리가 있는것이 확실했다. 절둑 거리는 상황이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잠시 왼쪽 무릎을 진정시키고 나서 자전거를 확인했다. 밤이라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체인이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여기서 다행스러운 것은 왼쪽 무릎 이외에 다친 부위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헬멧은 라이딩할 때마다 언제나 쓰는 것을 여기고 있지만, 그럼에도 헬멧의 역할은 제대로 도움받은 셈이었다. 또한, 왼쪽 무릎으로 낙차 하면서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 등으로 넘어졌던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다른 부위의 충격이나 아픔은 신기할 정도로 전혀 없었다. (지나고 나니 왼쪽 어깨 근육이 조금 뻐근한 감은 있지만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수준이다.) 아마도 넘어진 바닥이 평평했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급한 데로 밴 택시를 호출하고, 통증과의 사투를 극복하고 있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이내 택시가 왔고, 난데없는 몰골의 손님의 상황을 즉시 대처해주신 기사님 덕분에 무사히 자전거를 보관하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갈 수 있었다. (어떤 분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응급실 앞까지 태워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린다.) CT를 촬영하고 담당 의사분께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뼈나 조직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고, 육안으로도 별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는 내용과 함께 반 깁스와 약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서는 응급실의 풍경은 여전히 치열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모로 천운이었다고 생각들만큼 다행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오늘 오전, 출근에 앞서 병원에 들러 상태를 확인했다. 왼쪽 무릎의 피를 뽑아 확인 해본 결과, 단순히 부어 오른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무릎에 피를 뽑았을 때, 완전히 피가 나오는 상태면 신경이 끊어지거나 이상이 있다는 징조. 흰색에 가까운 색이 나오면 정상적인 상황. 피에 묽어진 형태로 나오면 부워오른 상태라고 한다. 피가 나오는 상태라면 MRI를 찍고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번 주까지 반깁스를 착용하고 주말 무렵 풀러보고 생활해보고 이상 없으면 관리 잘하면서 생활하라는 의사분의 소견과 함께 처방받은 약봉지를 들고 절둑거리며 다시금 출근길에 나섰다. 난생처음 깁스를 해보고, 난생처음 라이딩에서 사고도 당한 주말이었지만,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만 되뇌어졌다.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될 때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예감이지만, 우선은 별 탈없이 이 정도 수준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다가오는 내년의 좋은 기운을 위한 액땜이라 셈 치고 잘 관리해야겠다.  

 

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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