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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색

최백호 - 바다 끝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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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관통하는 노래와 음색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위안이기도 하고, 때론 낭만이 되기도 하는. 그저 세련된 멋으로 정리되기엔 아쉬움이 짙게 남는 흔적. 들려오는 노래와 음색의 선율 속에서 발견하는 지난날의 한 조각. 그렇기에, 시대를 관통한다는 전제를 붙이는 것은 대중의 불호가 다소 적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OST로 잔잔하게 알려진 노래인 '바다 끝' 또한 시대를 관통하는 한 조각으로 남겨질 노래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 어느 날 인터넷 서치를 하던 도중 알게 된 이 노래에 매우 젖어들었던 적 있었다. 옷깃에 가랑비가 스며들어 축축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차분함으로 마음은 여물어져 갔다. 지나간 옛사랑 일지, 흘러간 시대의 청춘인지. 스며드는 이 감정들이 어디에서 찾아오는 것인지를 알 길은 없었다. 그저 한 가객이 읊조리는 나지막하지만 선명하고, 노쇠했지만 강단 있는 전달만이 청각을 맴돌았다. 나에게 있어 이 곡은 그런 의미로 남겨져있다.

최백호라는 아티스트는 그러한 존재이다. 습한 안개 같으면서도, 그 속을 묵묵히 걸어가게 되는 고독한 인간에게 비추는 잔잔한 그림자와 같은 소리를 내는 가객. 어디로 떠나가고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은 기분을 전달해주는 묘미가 있다. 그의 대표곡인 '낭만에 대하여'로만 익히 알려져 있다 생각 들지만, 일흔이 넘은 그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푸릇한 신예 뮤지션들과의 조우를 거리낌 없이 행하고, 그 안에 자신의 소리를 녹여내는 것에서 거침이 없었다. 

 

남기고 싶은, 때론 잊혀지고 싶던 흔적들을 
이 노래와 함께, 저 바다 끝에서 놓아주어야 할 순간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2022년. 나는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비워야 하는 시간일까? 본능적으로 차분해지고, 움츠러드는 계절과 함께 맞이하면서 찾아오는 이 시간. 무의식적으로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이 노래를 재생한다.  계절만큼이나 한기로 인해 서늘하고, 맞닥뜨린 일들의 고민이 쌓여갈수록, 홀로 멍하니 서있는 바다 앞모습을 그려보며 눈을 감는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야 하는 시간일까. 

남기고 싶은, 때론 잊혀지고 싶던 흔적들을 이 노래와 함께, 저 바다 끝에서 놓아주어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서서히 가라앉는 흔적들이 희미해질 무렵, 나와 당신. 오늘의 시간은 심연 아래로 사라질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서글퍼지는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넘실대는 저 파도 줄기 위로 스며들고 있는 태양 빛 한줄기에 남겨질 것과 잊힐 것에 관한 흔적이 담긴 올해를 놓아주며, 다가오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고, 그저 무탈하기를 소망해본다. 

최백호 - 바다 끝 (2017. 지니뮤직, Stone Music Entertainment) 

 

- 2022.12.09 : 탈고

(※ 본 글은 CHRP '문화유량단'에서 동시에 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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