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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

교권의 종말 : 서초구 초등 교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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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평범했던 어느 화요일에 한명의 교사는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올해 임용되어 처음 발령받았던 학교에서 말이다.그토록 기다려 성취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접게 했던 것일까. 


교권의 독주. 폭력의 시대

개인적으로 학교에 대한 기억은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나 중,고등학교의 경험은 더욱 두드러진다. 억압과 폭력이 난무했던 야만의 시간이었다. 준비물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다거나, 시험 점수가 떨어졌거나 할 때면 내가 속한 학급의 담임들은 모두 매를 들어 올렸다. 손바닥과 종아리가 부어오르기 쉽상이었다. 더러는 따귀를 갈귀기도 했다. 특히나 고등학교 1학년때의 담임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만큼 악연이었다. 처세와 사욕으로 가득한 말종이었다. 어느날 굉장히 오해를 당했던 상황이 나에게 생겼는데, 그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나를 몰아세우기 바빴다. 졸업 이후 타교로 전근을 갔다고 전해들었는데, 지금쯤이면 거의 정년퇴임을 했을 것이다라는게 추측이다. 왠지 모를 시원함이 가슴속에서 부터 가득 밀려왔다. 이미 나는 상관없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였지만. 

반항기로 가득했던 사춘기 시절의 학생이던 나의 학교는 이런 이미지로 남겨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처럼, 시간이 흘러 이런 악연이 끊어지길 바랬다. 내 이후의 세대들은, 더 이상 이런 수모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학생을 도구로 취급했던 비인간적인 행태에 토악질이 나오던. 그때의 교권은 여러모로 문제 투성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변했다. 더 이상 교사들은 억압과 폭력으로 학생을 휘두를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더는 나의 세대가 겪고, 나아가 과거 선배들이 겪었던 풍토가 뒤집혀지는 것이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 수록 흐름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예감이 확신이 되가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교권의 종말. 교사의 소멸

초등학교 교사의 소식은 탄식을 불러왔다. '교권이라는 것이 상실될 만큼 변했구나. 내가 알고 있던 학교가 아니구나.' 사춘기적 경험은 옛날 옛적에 벌어진 이야기와 다를 바 없이 말이다. 틈틈히 접하게 되는 학생들의 교사 구타, 억압, 집단 괴롭힘의 주체가 역전된 것이다. 일부 학생들의 부모들 또한 극렬한 자식 사랑에 힘입어 이를 동조하고 있다. 어느날 한 교사는 자신의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발견되어 부모로 부터 카톡으로 꾸중을 들어야 했고, 주말에도 필요하다면 시중 부리듯 수시로 문자를 날리는 모습에서 괴리감을 보았다. 교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써 자신의 직장 밖은 그저 같은 세상일 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일부가 아닌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강압하고자 하는 논리는 어디에서 부터 출발하는 비양심적인 작태인가. 그리고 결과는 오늘날의 사단으로 이어졌고, 애석하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비혼과 저출산이 화두가 된 요즘. 시대를 넘어 국가 존폐라는 관점에 직면한 오늘 우리는 이러한 풍경을 학교 이외의 공간과 환경에서 자주 목격한다. 권리를 남용하는 것은 중죄이지만, 그것을 짓밟는 행위 또한 중죄이다. 월권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를 가벼이 생각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이를 바탕으로 공작을 펼치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풍토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자유에 도전하는 모양새이다. 누구나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만들어가며 이끌어가는 이면에는 모두가 이를 중요히 여기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개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라 깎아 내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외면하고자 하는 마음이 본인들에게는 편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방치하고 외면하는데 급급할 것인가. 시대가 아무리 삭막해져간다고 한들, 최소한의 범주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슈에 반응하여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달려들어 물어 뜯다가 일이 터지면 그랬구나 하면서 산화되는 생각들이 너무 만연해있다. 교권을 강화시키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개념은 동의하지만,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 의식과 이에 대한 논의가 과거 보다도 줄어든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 사람의 비극적인 선택을 보며, 표본에 집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공동체의 개념으로 회귀하여 다시금 조율하고 다듬어나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나가는 가십거리로만 치부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다방면에 걸쳐 우울해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끝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3.07.20

SE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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