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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

성공의 맛 좀 보시겠습니까? [성공포르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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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성공에 대한 갈음이 비이상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비단 자기 결핍에서 시작되는 것이 모든 근원이라 보긴 어렵다. 그렇기에 결정적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비굴하고 처연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언제부턴가 성공에 관련된 내용들이 알고리즘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성공의 맛은 언제나 달콤하게 느껴진다.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내 자신에게도 존재하는 일부의 결핍을 채워 넣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다채널을 넘어 과채널의 시대로 접어든 요즘에는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하여 취합하기 최적인 요즘, 이러한 콘텐츠들은 알게 모르게 동기부여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속이 메슥거운 기분을 감추기 어려운 내용들도 더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내용과 사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용어들을 나열하며 설득이라는 표면적인 모습 뒤로, 나의 신도가 되라는 듯한 주문을 외우는 교주의 모습들이 보였다. '스위치를 켜라', '마인드 리셋을 시행해라', '뇌의 이해 구조를 통째로 바꿔라', '알파가 돼라', '이런 습관을 들이고 이렇게 행동해라' 등. 적어도 한 번쯤 들어본 것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펼쳐질 것이다.

 

남들보다 우월하고 특별하게. 과연 당신들의 메시지가 정답일까?

 

일전에 쓴 글 自家撞著(자가당착) : 무엇을 개발하라는 것인지에서도 언급했던 성공의 방정식이란 것이 책 쓰고, 강연하고, 유료 구독자 쓸어 담는 것을 두고 하는 소리인가? 이것들이 진정으로 말하는 성공인가?라는 것에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한다. 발매 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과정 또한 마케팅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책의 내용과는 동떨어지는 콘셉트로 인플루언서들을 내세워 대중에게 전파하고 이를 토대로 판매량에서도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것까지는 좋지만, 그것이 책 내용이 좋기 때문에 라는 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 내용 또한 그렇다. 알듯 말듯하면서, 어디서 들어 봤을 법한 용어들을 섞어 새로이 창제한 것 마냥 이를 공표하며 자신의 성공에 대입시켜 언급해 놓은 목차의 내용과는 동 떨어지는 내용이 들어 있는 공식들. 많이 읽었다고 감히 말하기 어렵지만 살아오면서 어림잡아 자기개발 분야를 백권 정도 읽어본 기준에서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신기루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책의 내용이 좋으면 책을 이야기가 부각되지, 몸매와 얼굴이 왜 부각돼야 하나? 누구나 알만한 책도 아닌 이제 막 나왔다는 책을 두고 말이다. 어느 출판사 관계자들이 요즘 일부에서 진행하는 홍보 방식을 보며, '우리가 해오던 전통적인 채널과 책이라는 것을 홍보하는 방향성을 모두 부정당한 것 같다.'라는 언급은 그들이 원하는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역설적으로 짓밟아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잘나면 그만'이라고 외치는 성공팔이들의 관점에서라면 이 또한 성공일 수도.

아이러니하게도 몇천억을 가진 자산가라는 사람이나, 무일푼으로 시작한 흙수저라는 백그라운드에서 성공을 일군 사람이나 결과치는 모두 같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 더 큰 사업으로 도약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왜 자신들의 성공을 들어내고, 이런 배경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대중들에게 재 판매하는가. 만약 성공을 했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여실히 많은데도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성공이라는 간판을 내세워 빨 때 꽂고 돈 빨아간다는 소리가 괜히 들리겠는가? 이러니 성공을 가지고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라고 할 수밖에.

그렇기에 최소한 허울뿐인 허상으로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며 성공을 외치는 이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말이든, 아무리 좋은 결과이든 간에. 이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여러 사람들의 공허함에 침투하여 속삭이는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성공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성공학을 전도하고 싶다면, 왜 성공을 가지고 장사를 해야 하는지. 그렇게도 부러울 만큼의 재력과 능력을 갖추었다면, 왜 그렇게 성공을 세일즈 하는데 혈안이 되었는지. 대체 뭐가 아쉬워서 말인가.

 

이들이 외치는 진리는 결과적으로 이 시대의 아픔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성공팔이들의 민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적어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이름 좀 날렸다는 그들이 궁지로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목적 없는 비난은 비판이 뒤따르지만, 양상은 다르게 보인다. 대중들이 알게 모르게 받아들여지던 그들의 생각이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성공이라는 것이 단순 정량적으로 판단될 수 없거니와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청소기를 고르는데 기능이 고만고만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고만고만하다면 결국 가격과 브랜드로 구매를 선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성공은 저마다의 방식과 기준이 존재한다. 어느 하나를 표본 삼아 이를 왕도라고 칭한다면, 핵개인화로 접어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청소기를 구매하듯, 내가 기준을 세워 나아가는 삶이 기준이 되는 것이 최우선 아닐까?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 서울의 달에 등장했던 홍식 (한석규 역)은, 자신의 삶을 한탕 크게 해 보겠다는 야심을 품으며 외쳐오던 말과는 달리, 그의 말로는 지친 삶에 대한 토로만이 남겨졌다. 'Boys Be Ambitious'. 그가 늘 외쳐오던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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